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스 윈턴 (문단 편집) == 아이들을 구하자 == 침례계 개신교로 개종한 유대계 영국인 은행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. 상당한 부자였던 니콜라스 윈턴 경은 1920년대 중반 [[은행원]]으로 재직하였으며 1938년에 그저 그런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[[런던]]에서 근무하고 있었다.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휴가를 받아 [[스위스]]에 스키를 타러 갔는데, 그의 친구 마틴이 그를 [[체코]]로 불렀다. 당시 체코는 [[나치]] 독일에 점령되어 있었고, 때문에 수많은 [[유대인]]들이 수용소에 갇혀 지냈다. [[수용소]]의 참상을 본 윈턴 경은 인도적 행위를 하겠다고 결심했다. 당시 [[영국]]에서는 [[독일]]과 [[오스트리아]]의 유대인 아이들을 대거 [[양자(가족)|양자]]와 [[양녀]]로 받아 나치로부터 목숨을 구해주려는 행동이 한창이었지만 체코까지는 그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었다. 윈턴 경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유대인 아이들을 영국으로 [[입양]]보내는 절차를 밟았다. 윈턴 경은 도린 워리너, 트레버 채드윅[* 이후 윈턴 경은 채드윅이 나치가 침공한 이후에도 그곳에 있었다며 그를 잊지 말아달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. "Chadwick did the more difficult and dangerous work after the Nazis invaded... he deserves all praise"], 나콜라스 스탑포드, 비틀릭 웰링톤, 조세핀 파이크, 빌 바라젯티 등 뜻을 함께한 사람들과 체코에서 사무실을 연 후 나치의 위협을 받아가면서도 자신의 재산을 털어 나치 [[장교]]에게 거액의 [[뇌물]]을 주고, 영국에서 법적 절차를 밟아 수용소에 갇혔던 669명의 유대인 아이들을 무사히 영국으로 입양보냈다. 윈턴 경은 마지막으로 250여 명의 아이들을 태운 기차를 보내려 했지만, 그때 나치가 [[제2차 세계대전]]을 일으켜 그 아이들은 모두 [[행방불명]]되었고, 전쟁이 끝난 후 조사 결과 이 아이들 중 겨우 두 명만이 살아남은 것으로 확인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